국내 연구진, 세계 최초 ‘나사형 나노 구조’로 전자 스핀 조절 성공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9월 05일, 오전 06:46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국내 연구진이 전자의 스핀을 외부 자기장이나 극저온 장치 없이도 조절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기술을 개발했다. 이 획기적인 성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9월 5일자에 게재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근 고려대 교수, 정은진 고려대 연구원, 전유상 고려대 박사, 남기태 서울대 교수
나사처럼 꼬인 나노 구조, 스핀을 선택적으로 거른다

연구는 고려대학교 김영근 교수팀과 서울대학교 남기태 교수팀이 함께 수행했다. 이들은 금속의 결정화 과정을 전기화학적으로 제어해, ‘카이랄(Chiral) 자성 나노 나선 구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카이랄이란 오른손과 왼손처럼 서로 겹칠 수 없는 거울 대칭 구조를 말한다.

이 나노 나선 구조에서는 전자의 스핀 가운데 한쪽 방향만 잘 통과시키고 반대 방향은 막는 현상이 나타났다. 즉, 나선의 꼬임 그 자체가 스핀을 선택적으로 거르는 ‘필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현상이 상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차세대 정보 기술 ‘스핀트로닉스’에 돌파구

스핀은 전자가 가진 고유한 자기적 성질로, 정보 저장과 연산에 활용될 수 있다. 이를 응용하는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 기술은 기존 반도체 메모리보다 전력 소모가 적고,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유지되는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는다.

그동안 스핀 제어 연구는 주로 유기분자에서 진행됐지만, 낮은 전도성과 불안정성 탓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성과는 금속 기반의 나노 나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스핀트로닉스 실용화에 중요한 돌파구를 제시한다.

“새로운 스핀 전자공학 시대 열 것”

김영근 고려대 교수는 “자성체 자체가 스핀을 정렬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카이랄 구조와 결합하면 스핀 흐름을 안정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가 카이랄 스핀트로닉스의 원리를 한층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기태 서울대 교수는 “무기물 금속에서 카이랄성을 분자 수준에서 제어한 것은 중요한 과학적 난제를 풀어낸 성과”라며 “향후 다양한 응용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반도체연구실지원핵심기술 개발사업과 기초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진행됐으며, 국내 연구진의 독자적 역량으로 이뤄진 성과다.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된 점은 우리나라 소재·나노 과학 연구가 세계적 수준임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전문가들은 이번 성과가 스핀트로닉스 기반 차세대 반도체와 메모리 소자 개발에 기초가 될 뿐 아니라, 나노·재료 과학 전반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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