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의 무역 합의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함에 따라, 일본산 자동차의 대미 품목 관세가 먼저 인하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산 수입차에 부과하는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출 것을 지시했으며, 해당 조치는 7일 이내에 발효될 예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행정명령이 지연되면서 대미 자동차 수출 경쟁국인 일본과의 가격경쟁력에서 일시적으로 뒤처질 위기에 놓였다.
우리 통상당국은 미국의 이번 행정명령 내용과 실제 관세 조치 이행 과정을 주시하면서, 한국 자동차 관세 인하 등 한미 무역 합의 이행을 위한 협의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美, 韓보다 먼저 日 자동차 관세 15%로 조정…정부 "일·EU보다 불리하지 않게"
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통상당국은 지난 7월 30일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이후 합의 내용 이행을 위한 양국 실무진 간 후속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대미 투자 등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사안들의 세부 내용을 조율하기 위한 과정이다.
정부는 지난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하는 대신, 미국이 부과한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현행 25%인 자동차 품목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같이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미 수출용 한국산 자동차에는 25%의 고율 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관세 조정을 위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해야 하는데, 이를 명문화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결정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가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놓고 한미 양국 간 인식차가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지난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리 측은 무역 합의 이행에 대한 명문화를 요구했지만, 미국 측은 대미 투자 운영 방식이나 이익 귀속 등 세부 내용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맞서면서 결국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당국은 같은 상황에 놓였던 일본이 자동차 관세 인하를 우선 목표로 삼고, 미국이 요구한 대미 투자와 관련한 세부 사항에 일정 부분 합의함으로써 행정명령 서명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도 미국과 일본의 세부 합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합의 명문화 여부 등에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미일 행정명령 전문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현재 미국과의 금융 패키지에 대한 논의 등을 긴밀히 협의 중에 있다"며 "대외적으로 일본·EU 상황을 고려해 우리가 절대 불리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효 시점에 대해서는 "시점을 미리 예단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현재 미국은 한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자동차 관세요율 인하 합의 이행을 미루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이 자동차를 레버리지로 활용해 더 많은 양보를 유도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대미 투자 구체화 외에도 비관세장벽인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가 대표적이다.

도너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한국 정부 협상단과 무역합의를 타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악관 X. 재판매 및 DB 금지) 2025.8.1/뉴스1
설상가상 車 업계…"업계 피해 고려…정부도 속도 내야"
일본의 대미 자동차 관세 인하가 먼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대미 수출시장의 강력한 경쟁자인 일본이 15% 관세를 적용받는 반면, 한국산 자동차는 여전히 25%의 고율 관세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차는 한미 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으며, 기본관세 2.5%를 적용받던 일본·유럽연합(EU)을 상대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이후 25% 관세가 부과되면서 우위를 잃게 됐다. 여기에 일본이 15% 관세를 조기 확정하면서 부담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실제 현대차·기아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미국 관세 부담으로 영업이익이 총 1조6000억 원 감소했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25% 대신 15% 관세가 적용될 경우, 매달 손실 규모는 약 3200억 원으로 줄어든다. 관세 인하 발효가 한 달 늦어질 때마다 약 2100억 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70억 원 규모다. 이는 신차 출시 지연, 연구개발 투자 축소 등 연쇄 파급으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이 먼저 미국으로부터 무역 합의 이행을 끌어내면서, 정부의 기민한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이 관세 협상 타결 후에도 고위급 방문을 이어가며 합의 이행을 위한 물밑 협상을 해온 것처럼, 우리 정부도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지난 7월 22일 5500억 달러(약 767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자동차 및 쌀 시장 개방 등을 조건으로 미국의 상호관세 및 자동차 품목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공동문서를 남기지 않았고, 각각 자국에 유리한 해석을 내세우며 입장차를 보여왔다. 이후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행정명령 서명을 미뤄왔으나, 7월 합의가 체결된 이후 약 한 달 반의 조율을 거쳐 이날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수출의 핵심 산업인 '자동차'를 협상카드로 쥐고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트럼프식 협상 전략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사업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국방산업을 결합한 메머드급 협력안 등을 제안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송영관 KDI(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는 우리가 자동차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를 레버리지로 삼아 우리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어 "우리로선 사실상 당장 대응할 방안은 많지 않다"면서도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조선업 분야 협력을 국방산업까지 넓혀 미국에 먼저 제시하고, 협상력을 끌어올려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자동차는 한국 수출의 핵심 품목“이라며 "업계 피해를 고려했을 때 우리 정부도 (무역 합의 이행에)속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단 정부가 상황을 봐서 미국 측의 요구가 강경하다면 일정 부분 국내에 있어서 핵심 분야가 아닌 분야에 대해선 조금 더 양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해당 업종에 대한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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