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은 불법 체류 혐의가 있는 450여명을 체포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폭탄을 동원해 미국 내 투자를 사실상 강제하고 있는 와중에 불법 소지가 있는 미국 내 체류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읽힌다. 다만 미국 정부의 비자 발급이 상대적으로 깐깐한 만큼 원활한 공장 운영이 쉽지 않아질 수 있다는 걱정도 산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
◇현대차·LG엔솔 공장 급습한 美 당국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5일 입장문을 통해 미국 이민당국이 HL-GA 배터리 회사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을 벌인데 대해 “현재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임직원과 협력사 인원들의 안전과 신속한 구금 해제를 위해 한국 정부 및 관계 당국과 적극 협조하고 있다”며 “통역과 변호사 지원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현지 HL-GA 배터리 회사도 성명을 내고 “당국과 전면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며 “조사를 돕기 위해 건설을 일시 중단했다”고 말했다.
현대차(005380)는 아직 별도의 입장은 내지 않은 채 사태 파악에 분주한 기류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공장 외에 3만대 규모의 로봇 공장 신설 등이 예정돼 있어, 더 긴장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주류·담배·총기·폭발물 단속국 애틀랜타 지부(ATF Atlanta)가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에 있는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대규모 이민법 집행 현장에 참여했다며 공개한 사진. (사진=ATF 애틀랜타 엑스 계정)
앞서 이날 주류·담배·총기·폭발물 단속국 애틀랜타 지부(ATF Atlanta)는 4일(현지시간) 엑스(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번 작전에는 국토안보수사국(HSI)과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이민세관단속국(ICEO), 조지아주 순찰국 등이 참여했다”며 “지역 사회 안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강조했다”고 했다.
린지 월리엄스 HSI 공보관은 “이번 작전은 조지아주 주민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법을 준수하는 기업들 간의 공정 경쟁을 보장하며, 경제의 건전성을 지키고 근로자들을 착취로부터 보호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들은 불법 체류 혐의가 있는 450여명을 체포했는데, 이들 중에는 출장을 간 한국인 30여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현지 한국 영사 업무 담당자를 인용해 불법 체류 혐의를 받는 인원 중에는 한국에서 현지로 출장을 간 직원 30명 이상(협력업체 직원 포함)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회의 참석과 계약 등을 위한 비자인 B1 비자, 무비자인 전자여행허가(ESTA)를 소지한 채 현지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의 체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단속 대상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 당혹…“美 근무 방식 바뀔 것”
국내 산업계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첨단 전략 제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압박하면서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와중에 이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배터리 같은 첨단 제조업은 일반 가전 등과는 달리 공장을 가동하는데 있어 숙련 인력들이 필수적이다. 국내의 경험 많은 인력들이 미국에 주재원으로 부임하거나, 출장을 자주 가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필수적인 비자 발급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너무 깐깐해졌다는 볼멘소리는 이미 산업계 전반에 퍼져 있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ESTA를 이용해 미국 출장을 갈 때 입국 거부 사례들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고 다수의 기업 인사들은 전했다. 이를테면 삼성전자(005930)는 최근 사내 공지를 통해 “(ESTA로 미국을 가면) 1회 출장 시 최대 2주 이내로 일정을 잡고 초과 시에는 해외인사 담당자와 사전에 조율해 달라”고 당부했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HL-GA 배터리 회사 급습은 한국인 직원들보다는 공장 건설 현장의 외국인 인부 등이 대다수인 것 같다”면서도 “미국 근무·출장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무리 단기 출장이라고 해도 체류 목적에 맞는 비자를 반드시 받고 가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승인 절차를 기다려야 하는 만큼 업무 진척 속도는 느려질 게 불가피하다.
또 다른 대기업 고위인사는 “미국 내 생산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인 기업들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관련 대응이 약할 수밖에 없는 1차·2차 협력사들의 고민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불확실성에 이어 걱정거리가 또 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