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없는' 맥주 시대, 진짜 맥주란 뭔가[1등의맛]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19일, 오전 10:00

“K푸드 어벤저스가 모였다.”

세계로 뻗어가고 세계가 주목하는 K푸드 탑티어 회사들이 직접 K푸드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들려드립니다. 매번 먹는 거라 익숙하지만 실은 잘 모르는 우리 식품의 깊고 진한 맛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김치(대상)-만두(CJ제일제당)-유산균(hy)-빵(SPC그룹)-제과(롯데웰푸드)-아이스크림(빙그레)-맥주(OB맥주)-두부(풀무원) 등 각 분야의 1등 회사가 이름을 내걸고 매주 토요일 [1등의맛]을 배달합니다. <편집자주> ⑮

[오비맥주 브루마스터 김준규] “왜 한국에는 탄산음료 말고 다른 무알코올 음료가 없을까?” 맥주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나는 알코올을 피해야 하는 순간들이 유독 아쉽게 느껴지곤 했다. 그리고 15년 넘게 술을 공부하고, 지금은 맥주를 만드는 브루마스터로서 ‘맥주다움’이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최근 나는 그 질문에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2020년 오비맥주에 입사한 계기도 논알코올 맥주였다. 2019년 석사 논문을 쓸 때 관심 있게 연구했던 분야가 논알코올 맥주였기 때문이다. 카스 0.0 출시 소식에 나는 희망을 품고 지원했고, 현재까지도 오비맥주에 근무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논알코올 맥주 시장은 2021년 415억 원에서 2023년 644억 원으로 약 55% 성장했다. 2027년에는 946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내가 2019년 논문을 쓰며 예상했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논알코올 맥주 시장 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는 글로벌 브랜드 ‘코로나 세로(Corona Cero)’가 2024년 파리올림픽의 공식 맥주로 활동한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카스 0.0’이 논알코올 맥주 카테고리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2023년에는 ‘카스 레몬 스퀴즈 0.0’을 선보이는 등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병 제품으로도 선보이며 식당·주점 등 외식업계와의 접점도 넓혀가고 있다. 브루마스터이자 맥주 애호가로서 운동, 미팅, 지인들과의 모임 등에서 이제는 맥주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이제 논알콜 맥주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얼마나 마셨는가’를 중요하게 여겼다면,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즐길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알코올 유무는 선택의 조건이 아니라, 상황과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옵션이 되었다.

그렇다면 알코올이 없는 맥주도 ‘맥주’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논알코올 맥주를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대체재로 생각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점심 회식 자리에서 가볍게 즐기고 싶은 사람,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사람…다양한 순간 속에서 논알코올 맥주는 맥주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게다가 맛의 측면에서 봐도 양조가 입장에서 논알코올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더 만들기 까다롭다. 알코올이 제거되므로 맛의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느껴진다. 홉의 쓴맛은 튀지 않게, 몰트의 단맛은 눅눅하지 않게, 탄산은 날카롭지 않게 조절해야 한다. 수십 번의 블렌딩과 시음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이건 맥주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잔이 완성된다.

논안ㄹ코올 맥주를 만드는 방식도 다양하다. 향과 맛을 섞어 만드는 방식, 발효를 거의 하지 않는 효모를 쓰는 방식, 그리고 일반 맥주를 만든 뒤 알코올만 제거하는 방식이 있다. 방법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내가 주목하고 참고했던 연구 분야는 바로 스마트 알코올 분리 공법이다.

대표적으로 ‘카스 0.0’은 보리, 홉, 효모, 물을 사용해 일반 맥주처럼 발효를 거친 뒤, 마지막 단계에서 스마트 알코올 분리 공법을 적용해 알코올만 정교하게 제거한다. 이 공법은 맥주의 풍미와 향, 목 넘김은 최대한 남기고 알코올만 덜어낸다. 극미량의 알코올(0.01~0.05%)만 남지만, 이는 평소 먹는 음식에도 발견되는 수준이다.

실제로 한국기능식품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G사의 묵은지에서는 1.14%, B사의 자양강장제에서는 0.71%, D사의 오렌지 드링크에서는 0.06%의 알코올이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렌지 주스나 묵은지를 먹고 취할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듯, 논알코올 음료를 먹고 취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맥주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맥주의 본질은 잔이 부딪히는 순간의 진동과 울림이다. 그 울림은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논알코올이라도 그 감동은 그대로 전해진다.

유학 시절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던 밤, 어머니가 보내주신 라면을 끓여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힘내자며 무알콜 맥주로 다 같이 건배했던 기억이 있다. 술기운 없이도 웃음이 넘쳤고, 서로를 위로하며 토닥였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맥주다움’의 본질이 알코올 도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맥주는 사회적 윤활유이자, 사람들과 모일 수 있는 핑계이며,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하는 존재다. 맥주에 기대하는 즐거움을 담고 있다면, 논알코올 맥주도 ‘진짜 맥주’다.

맥주는 언제나 의미 있는 순간과 함께해왔다. 잔을 들어 올리는 축하와 환대의 자리에, 논알코올 맥주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맥주다움’은 결국,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 속에서 완성된다.

오비맥주 이천공장 크래프트 양조 슈퍼바이저 김준규 (사진=OB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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