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온라인 플랫폼 확산에 따른 자영업 내 양극화가 좋고 나쁘다고 평가하기보다, 앞으로 양극화에 경제력을 잃고 어려워지는 분이 당연히 생길 것이므로 그에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생산성 낮은 자영업자에게 금융 지원을 하면 다른 자영업자의 매출이 감소한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특히 4년 이상 장기 지원과 2000만 원 이하의 소액 지원도 실적 개선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 단기에 충분한 규모의 지원을 추후 효과를 볼 유망 업체들에 몰아줘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은이 17일 공개한 '유통플랫폼 성장이 지역 자영업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방향' BOK이슈노트 보고서에는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 소속 정민수 팀장·정희완 과장의 이런 분석이 담겼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해당 보고서가 발표된 지역경제 심포지엄에서 개회사를 하고, 이같은 주장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정부의 자영업 지원은 이미 생산성이 많이 낮아진 업체에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면서 "성장 잠재력 큰 자영업자를 신중히 선별해, 충분히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쟁에서 밀려난 자영업자의 재기를 도모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스러운 전업도 유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생산성이 낮아져 한계에 다다른 기업은 질서 있는 퇴출과 함께 높은 생산성 부문으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주류 경제학 논리와 같다.
죽어가는 업체, 대출로 연명하니…"다른 업체 몸져 눕더라"
저자들이 분석한 결과, 정부의 지난 2018~2023년 자영업 금융 지원은 일정 부분 효과를 거뒀다. 정책 자금의 수혜를 본 업체들은 지원 1년 후 매출이 8.8%, 고용이 1.2% 증가, 폐업 확률은 1.6%포인트(P) 감소했다.
그러나 매출 개선 등의 효과는 △창업 초기 △청년층 △소규모 업체에 집중됐다.
특히 2000만 원 미만 소액 지원과 4년 이상 장기 지원은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들은 "2000만 원 미만의 소액 지원은 매출을 개선하지 못하고 폐업 방지 효과도 미약(-0.4%p)했다"면서 "4년간 계속 지원을 받은 업체의 성과는 2년 지원 후 종료한 업체와 비교할 때 추가 개선이 없었다"고 밝혔다.
오히려 생산성 낮은 업체에 내어준 지원은 다른 업체의 성장을 저해하는 효과를 유발했다. 금융 지원을 받는 저생산성 자영업체 비중이 1%P 상승할 때, 지역 내 다른 자영업체 매출은 1.7%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위태로운 자영업자에게 저리 대출 등의 금융 지원을 한다고 멀쩡한 업체가 피해를 본다는 분석은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보고서를 쓴 정 팀장은 "경쟁력 낮은 업체가 사업을 유지하면 점포와 직원 등 자원을 사용하면서 다른 업체의 생산 비용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또 "한계 업체들은 금융 지원에 기대어 사업을 유지할 때 아무래도 가격을 높일 수 없어 작은 마진을 갖게 된다"며 "이런 가격 하락이 다른 업체 이익을 저해한다"고 부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7.10/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직원보다 사장이 사라지는 시대…"평가 대신 대응할 때"
이번 보고서는 엉뚱한 시점에 나온 분석이 아니다. 최근 플랫폼 경제 확산에 따른 자영업 지각변동을 고려하면, 정부의 지원 정책 패러다임도 이제는 바뀔 때라는 것이 한은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배달과 온라인 유통 등 플랫폼 경제가 확산하면서 자영업 환경이 뒤바뀌고 특히 자영업 내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유명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으로 대면 상거래에 기반한 사업은 침체하고 공실 상가가 급증하는 현상을 누구나 체감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이런 지각변동을 수치로 증명했다. 온라인 소비 비중이 1%P 상승할 경우 비수도권 소매업 자영업자는 지역 인구 1만 명당 6.1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도소매업 자영업자가 고용한 인원은 3.7명 감소에 그쳐, 사장이 직원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로 분석됐다.
음식점업에서는 온라인 배달 비중이 10%P 오를 때마다 자영업자가 1만 명당 3.4명 줄었다. 또 대규모 업체와 선(先) 진입 업체에 매출 성장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자영업자들이 서로 '윈윈'했던 소규모 골목 상권은 기술 발전에 따라 여러모로 유지되기가 힘들어진 셈이다.
한은은 이런 변화를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역 경제를 살리려면 정확한 현상 파악과 대응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플랫폼 경제가 일으키는 변화는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서 훨씬 뚜렷했다.
정 팀장은 "온라인 플랫폼 확산에 따른 양극화가 좋고 나쁘다고 평가하기보다, 양극화로 경제력을 잃고 어려워지는 분들이 생길 것이므로 우리가 앞으로 그에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도 같은 생각을 내비쳤다. 그는 '마을이 사라지면 국가도 사라진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 지역 경제는 그간 고성장 과정에 가려졌던 구조적 문제들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지역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과거처럼 모든 지역과 부문에 자원을 균등하게 배분하기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장 잠재력 높은 곳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며 "정책 지원에 자영업 성공 사례가 계속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유능한 후발 주자가 육성되는 선순환 체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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