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News1 김명섭 기자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일부 농축산물 시장을 추가 개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향후 협상 결과가 국내 산업계와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미 간 상호관세 유예 시한인 8월 1일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농업계를 비롯한 민감 산업의 이해관계가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전날(14일) 브리핑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비관세장벽 해소 문제는 민감해서 수용할 수 없는 것도 있어 관계 부처, 국회와 협의해 왔다"며 "남은 시간 동안 이 부분을 가속화해서 우리 나름대로의 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관련해선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혀, 일부 품목에 대한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민 먹거리와 직결되는 농업 분야는 그간 보호 필요성이 강조돼 온 대표적인 민감 산업이지만, 여 본부장의 발언은 정부가 협상 전략 차원에서 일정 범위 내 추가 개방 여부를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美, 쌀·쇠고기 장벽 지속 언급…정부 "우리 검역은 과학적" 방어벽 구축
한미 관세 협상에서는 그동안 농식품 검역 등 비관세장벽이 지속적인 쟁점으로 다뤄져 왔다. 미국은 해마다 발표하는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사과·배·감자 등 검역 절차 지연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승인 절차 완화 △쌀시장 추가 개방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등을 대표적인 한국의 시장 접근 제한 요소로 꼽아 왔다.
이 가운데 미국이 꾸준히 문제 삼는 대표적 항목은 쌀, 쇠고기, 유전자변형생물체(LMO) 등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산 쌀 약 13만 톤을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수입하고 있으며 초과 물량에 대해서는 513%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과도한 장벽으로 보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산 쌀에 50~513%의 관세를 매긴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쇠고기의 경우, 한국은 광우병 우려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 역시 미국 측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 대상이다. 미국은 LMO 승인 절차,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등 국내 검역·안전성 심사 기준이 과도해 자국산 농산물 수출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리 검역 및 안정성 기준은 과학적 기준에 기반한 검역 절차"라는 점을 강조하며 방어 논리를 구축 중이다. 정부는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최대 수입국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섞여 유통될 경우 소비자 신뢰가 흔들려 미국산 수입 자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설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산업부가 농림축산식품부에 미국산 사과 수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수 품목에 대한 협상 논의도 주목을 받고 있다. 농업계는 "유해 병해충 유입과 생태계 리스크뿐 아니라, 국내 농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농업계 관계자는 "통상 협상은 국가 전체의 실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공감은 있지만, 국민 먹거리와 직결된 사안을 업계나 국민과의 협의 없이 전략적 카드로 다루는 접근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민감 사안을 협상에 포함하려면 정부 내 충분한 조율과 사회적 수용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직 구체적 카드로 채택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촉박한 시한 속 농업계와의 소통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향후 여론 수렴과 내부 설득이 협상 전략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물론 통상당국도 여론 수렴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시한 내 실익 확보와의 균형이 과제인 상태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워싱턴D.C에서 귀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7.1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최종 협상 카드로 어떤 항목 오를까…여한구, 이른 시일 내 방미 예정
여한구 본부장은 이른 시일 내에 한 번 더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막판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협상에서는 비관세장벽 완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미국산 첨단 부품 구매 확대 등 다양한 사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종 협상 카드로 어떤 항목이 테이블에 오를지는 남은 기간의 조율에 달려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농산물 시장 개방 등 국민 정서와 직결되는 사안이 자칫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국내 절차와 여론 수렴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도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이라, 우리에게 실익이 있다면 개방 자체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농산물은 국민 정서와 직결된 민감한 분야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시행됐지만, 농촌이 위축된 측면은 여전히 존재한다. 일본의 쌀값 폭등 사례처럼 장기적으로 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국내 여론을 충분히 반영해 협상 과정에서 설득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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