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의 구원투수’…식탁 바꾼 부회장님의 경영 비결은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15일, 오전 09:46

우리 사회에 따뜻함을 전해온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명사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대담=예종석 명예대기자(한양대 명예교수)·정리=이지현 기자] 예전에는 설탕 한 봉지가 부의 상징이었다. 100%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쌀보다 비싼 고가품으로 취급한 것이다. 그랬던 것을 ‘삼양설탕’이 판도를 바꿨다. 국민 먹거리 자립을 목표로 제당사업에 진출한 삼양사가 정제설탕 대량 생산에 성공하며 대한민국 식탁을 바꾼 것이다.

김량 삼양사 부회장은 “할아버지인 수당 김연수 선대회장이 모두 한 일”이라며 공을 돌렸다. 설탕·소금 기업에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꼬박 101년이 걸렸다. 김 부회장은 창립 101년을 맞은 삼양그룹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량 삼양사 부회장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삼양의 시작을 설명했다. (사진=방인권 기자)
-삼양그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집단 중 하나다. 지난해가 100주년이었는데.

△1921년 일본 경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할아버지께서 형인 인촌 김성수 선생이 설립한 경성방직을 운영하다가 1924년 삼수사를 창업한 것이 삼양의 시작이다. 유학 중에 일본 산업을 인상 깊게 보고 돌아왔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산업기반은 전무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회사가 우리나라의 토지수탈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농민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간척사업을 통해 근대적 농장 7개를 조성했다. 당시에 간척 기술도 제대로 없었을 텐데 어떻게 간척사업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때 간척사업 등을 통해 여의도의 약 6배에 달하는 농토를 일구는 놀라운 결실을 맺었다. 그 토지가 삼양의 든든한 기반이 됐고 훗날 산업자본으로 전환돼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기업의 해외 진출 1호도 삼양인데.

△선대회장께서 일제 강점기에 만주 시찰을 다녀오고 만주가 미래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1939년 중국 심양에 진출해 ‘남만방적’을 설립하고 오리엔탈 맥주회사도 인수했다. 삼척기업이라는 경영난에 빠진 기업도 인수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기업이 안정되려 할 때 1945년 광복을 맞으며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귀국해야 했다. 내가 듣기론 재산의 절반 이상이 만주에 있었다고 한다.

-귀국 후엔 어떤 사업을 했나.

△당시엔 조선총독부가 염전을 이북에 많이 조성했다고 한다. 38선이 막히니 남한에 소금 품귀가 나타나 할아버지는 간척지에 염전을 조성했다. 염전이 될만하니 6.25전쟁이 터졌다. 부산에 내려가 사무실을 만들고 사업을 다시 구상했다. 의식주 중에 뭔가를 하려고 보다가 당시에 수입을 가장 많이 하는 설탕을 택했다. 그런데 수입을 하려면 항구 쪽에 위치를 정해야 해서 부산, 마산, 울산을 살피다가 울산으로 위치를 정했다. 당시엔 울산이 조그마한 어촌이었다. 나머지는 황무지였다. 큰 배가 들어올 수 있도록 인근을 매립해 부두를 만들었다. 이 황무지는 지금의 울산산업단지가 됐다. 선대회장님의 혜안이 정말 대단하다.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의 시작은.

△원당을 수입하기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가지고 있던 토지를 헐값에 팔았다. 그리고 지속적인 신사업 발굴과 품종 다각화를 추진했다. 1972년 국내 제당사와 함께 선일포도당공업을 공동 인수했다. 1976년 인천에 전분당 공장을 설립하고 1984년 선일포도당공업 지분을 완전 매입함으로써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새로운 식품소재 사업 영역을 개척했다. 1988년 신한제분을 인수하며 제분업에도 진출했다. 이렇게 식품군이 우리 사업에 들어왔다.

-삼양의 양대 축은 식품 외에 화학도 있는데.

△1960년대 후반부터는 국민에게 값싸고 질 좋은 의류를 제공하기 위해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터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기초로 석유화학 분야에 진출, 산업 전반에 활용되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까지 확장하며 식품소재와 화학소재 양축 체제를 구축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의약 및 바이오 부문에 진출해 항암제와 DDS(약물전달시스템) 등 전문 의약품과 생분해성 봉합사 등 의료기기 사업에도 진출했다. 생분해성 봉합사는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분해되는 수술용 실이다. 장기, 점막 등 실밥 제거가 어려운 수술 부위의 봉합에 주로 사용된다. 지난해에는 약 50개국 200개 이상의 기업에 5500만 달러 규모의 원사를 공급해 글로벌 봉합원사 시장 점유율 1위로서 글로벌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또 패키징 사업에 진출해 국내 최초 무균 충전 음료생산과 함께 PET 원료부터 재활용 PET 생산까지 친환경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이후 크고 작은 인수·합병(M&A)를 많이 했다. 지난 2월 상장한 반도체 포토레지스트(PR) 소재 전문기업 삼양엔씨켐과 화장품·퍼스널케어 소재 전문 삼양케이씨아이도 우리 회사다.

-경영승계를 위해 어떤 훈련을 받았나.

△미국과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상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장남이 아니기에 삼양사에는 못 들어가는 것으로 정해져 있어서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께서 그렇게 말렸다. 그리고 대고모댁 회사였던 경방으로 보냈다. 31세 때였다.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대리직함을 받고 창고장으로서 하역노동자 관리 업무도 해야 했다. 임금단체협상 때면 분위기가 험악해져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아 내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차장까지 하다가 경방필백화점을 세운다고 해서 경방유통에 부장급으로 옮겼다. 외환위기 이후 경방필백화점이 어려워지며 아무도 사장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그땐 경방필백화점 사장을 맡으라고 했다. 2002년에야 삼양그룹 식품회사 삼양제넥스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식품분야 업무를 16년간 했다.

김량 삼양사 부회장은 인터뷰 중 수당 선생의 삼양훈을 꺼냈다. ‘분수를 지켜 복을 기르고(安分以養福),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기를 기르며(寬胃以養氣), 낭비를 삼가하여 재산을 기른다(省費以養財)’는 삼양훈은 삼양의 기업철학의 바탕이 되며 삼양문화의 출발점으로, 1931년부터 지금까지 사훈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위기의 순간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는데.

△실패 경험도 있다. 중국 전분당 공장 투자에서 현지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친환경 플라스틱 등 신사업 개발도 쉽지 않지만 기술기반 스페셜티 사업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연구개발 방향 설정과 마케팅, 판매 등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고부가가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페셜티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김 부회장의 역할은.

△아버지(김상홍 명예회장)와 작은아버지(김상하 명예회장)의 공동 경영 체제를 거쳐 지주회사에 형(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사촌(김원 삼양사 부회장, 김정 삼양패키징 부회장) 4형제가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께서 자녀 중 한 명씩만 경영에 참여시키려고 했는데 이후에 합의해 2명씩 경영체 참여하도록 했다. 매월 그룹차원의 경영회의가 있는데 M&A, 대규모 투자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함께한다. 책임경영의 일환으로 삼양사 등기 사내이사를 맡아 삼양사의 전반적인 경영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몸담아 애정이 많은 식품사업에 있어 필요한 조언이나 제안을 하고 있다.

-다툼없이 3대로 이어진 성공적 공동경영의 비법은.

△선대 회장님들의 우애와 존중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로 동업자라 여기며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하며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 네 형제가 공식·비공식적으로 점심을 함께 하며 나는 감정의 골이 쌓이지 않도록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회장의 큰아들이 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앞으로도 외부 경험과 내부 평가를 거쳐 적합한 인재가 승계하도록 할 계획이다.

김량(오른쪽) 삼양사 부회장이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와 파워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향후 성장전략은.

△삼양그룹 성장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글로벌’과 ‘스페셜티’다. 이를 위해 건강(Health & Wellness)과 첨단소재(Advanced Materials & Solutions) 분야에서 해외 사업장 신·증설 및 M&A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다. 삼양그룹에서 말하는 스페셜티란 단순 고부가가치라는 개념을 넘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차별성과 시장 지배력을 갖춘 전략 제품군을 의미한다.

-해외사업 비중과 향후의 전망은.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사업 비중으로 높여 나가고자 한다. 2024년말 기준으로 수출 비중은 약 30% 수준이다.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헝가리 등 다양한 글로벌 현지에서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해외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2030년까지 경쟁력을 끌어올려 글로벌 매출 비중 50%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식품 부문에서는 기능성 대체 감미료 및 식이섬유 소재, 냉동생지 등 건강과 웰빙을 위한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확보를 위해 해외 식품업체들과의 공동개발 및 응용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화학 부문에서는 반도체 소재, 친환경 소재, 퍼스널케어 소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스페셜티 케미컬 기업인 Verdant Specialty Solutions 인수를 통해 퍼스널케어 소재 포트폴리오를 더욱 확대하고 미국·유럽 고객들에 대한 대응역량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바이오팜 부문에서는 글로벌 생분해성 봉합사 사업, CDMO 사업, 신약 사업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다. 2023년 헝가리 공장을 건설하고 해외 매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또 미국 보스턴에 삼양바이오팜USA를 설립하고 다국적 제약사, 연구소 등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신약 후보물질과 기술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영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은.

△결단력과 실행력, 그리고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직과의 공감대 형성과 소통 능력도 필수적이다. 리더의 도덕성이 조직 내 신뢰와 로열티를 높이는 데 핵심이라고 본다. 솔선수범을 통해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양은 사회공헌 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데.

△‘정직하게 돈을 벌어 겨레를 위해 올바르게 쓴다’는 창업주 정신을 받들어 인재 육성, 환경 보전, 건강 증진을 목표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며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업 초창기 국내 최초의 민간 장학재단인 양영재단을 설립하는 등 인재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하나의 장학재단인 수당재단은 국내 인문, 과학 분야의 업적이 큰 이들에게 수여하는 수당상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장학사업을 펼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 재단의 장학사업을 통해 3만명에 가까운 수혜자를 배출했다. 또 여성 사이클팀을 통해 잠재력 있는 체육 인재를 육성하며 비인기 종목의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전국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연사랑 파란마음 그림축제’를 개최해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또 각 사업장별로 자연정화 활동을 전개하며 환경보호의 가치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돕기 위해 집수리 봉사활동, 연탄 배달, 김장 담그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지역사회와 건강한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상생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건강관리는.

△주 2회 PT를 받고 주말에는 골프를 즐긴다.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남기고 싶은 말은.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경영활동에 있어 초심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 진심이 담긴 삼양을 만들어 가겠다.

■김량 부회장 △1955년 △중앙고,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1986년 경방 입사 △2000년 경방유통 대표이사 사장 △2002년 삼양제넥스 대표이사 부사장 △2004년 삼양제넥스 대표이사 사장 △2009년 삼양제넥스 대표이사 사장, 삼양사 사장 겸직 △2011년 삼양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 △2018년 삼양사 부회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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