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대출만 조여선 못 잡는다…땜질 아닌 구조개혁 시급”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12일, 오전 09:00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여전히 주요국 중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가계부채 관리방식이 구조적으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현행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중심의 차주 단위 규제는 수도권 부동산 양극화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업소에 게시된 대출 등 상담 안내.(사진=연합뉴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경상성장률 연동 관리방식의 한계와 이를 대체할 중기적 관리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2024년 말 기준 GDP 대비 90%를 웃도는 수준으로, BIS(국제결제은행) 통계상 세계 5위에 해당한다. 정부는 부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경상성장률과 연계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관리해왔다. 예컨대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는 연간 경상성장률 전망치인 3.8% 내에서 맞추도록 설정됐다.

하지만 연초에 설정된 성장률 전망은 국내외 불확실성이 높아 연중 수시로 수정될 수밖에 없다. 실질성장률은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 팬데믹과 같은 외생 변수에 따라 크게 변동하며, GDP 디플레이터 또한 소비자물가지수(CPI)와는 차이가 커 정확한 추정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 변화 대응 비용 등 새로운 변수들이 경제성장과 물가 흐름을 뒤흔들고 있다.

연간 단위 목표 설정이 자주 바뀌면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금융기관과 가계 모두 대출 관련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특히 금융사는 대출 포트폴리오와 리스크 관리 전략을 설계할 때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핵심인데, 잦은 방향 전환은 계획 수립을 어렵게 만든다. 가계 역시 주택 구입이나 사업 자금 조달 시기에 불확실성이 커져 필요할 때 대출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경기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가 둔화되면 경상성장률도 낮아지고, 그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도 더 낮아져 대출이 위축된다. 반대로 경기 호황기에는 높은 성장률이 허용되며 대출이 과도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신용 공급이 경기 사이클을 따라 움직이며 경기 순응성이 강화돼 금융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이에 강 연구위원은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제처럼, 연간 전망치가 아닌 중기적 추세 성장률을 기반으로 가계부채 관리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통계기법으로 추정한 추세 경상성장률의 80~90% 수준으로 3년 단위 목표를 설정하면, 경기 흐름에 따라 신용 공급이 자동으로 조절돼 완충 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현행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중심의 차주 단위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소득 상위 10%가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등 대출이 고소득층에 편중돼 수도권 부동산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 연구위원은 대출 금액이 일정 수준을 초과할 경우 부담금을 누진적으로 부과하는 ‘거시건전성 분담금’ 제도를 제안했다. 이는 고액 대출자에게 과도한 차입의 외부효과를 가격으로 환산해 부담시키는 구조다. 실수요자는 보호하고, 과잉 차입만 억제하는 방식이라 기존의 획일적 대출 한도 제한보다 부작용이 적다는 설명이다.

강 연구위원은 “추세성장률 기반의 중기적 관리체계와 거시건전성 분담금 도입이 병행되면, 한국 가계부채 관리의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고 금융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책당국이 총량규제와 차주별 규제를 넘어 보다 정교한 거시건전성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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