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양조장 ‘기다림’ 의 조태영 대표
“빠르게,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미덕인 시대죠. 하지만 좋은 술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저희 막걸리는 240시간, 열흘 이상을 발효와 숙성에 온전히 씁니다.”

부산 양조장 ‘기다림’ 에서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막걸리 칵테일을 만드는 체험을 진행한다.
이곳 술에는 인공 감미료도, 탄산도 없다. 하루 생산량은 약 1000병. 많지 않지만 원칙만큼은 단단하다. “건강하고, 숙취 없는 술. 자연스러운 단맛. 오래 기억에 남는 잔. 그게 제가 지향하는 막걸리입니다.”
조 대표의 이력은 특이하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일본에서 바텐더 기술을 익혔고 프랑스 와이너리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했다. 포도밭에서도 일했다. 그렇게 세계의 술을 배운 그는 결국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막걸리’를 택했다.
“여러 나라에서 술을 경험했지만 결국 내가 빚어야 할 술은 막걸리더군요. 이 술은 단순한 전통주가 아닙니다. 지역의 감성과 사람의 정성이 오롯이 담기는 문화예술입니다.”
그는 2014년 사직동에서 양조장을 시작해 최근 해운대로 이전했다. 도심에서 전통주를 빚는 일은 쉽지 않았다. 허가를 받는 데만 1년이 걸렸다. 대부분의 공정은 여전히 손으로 이뤄진다. 함께했던 직원들이 하나둘 떠난 적도 있었지만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만든 술’을 지키고 싶었다.

부산 양조장 기다림의 대표 메뉴인 ‘기다림’
또 다른 제품 ‘동네아들’은 야구선수 이대호와 협업해 만든 막걸리다. 부산 토박이, 손맛 좋은 청년이 빚은 술이라는 콘셉트로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가장 기쁜 순간은요, 사람들이 ‘이거 누가 만든 거예요?’라고 물어볼 때예요. 그건 우리 술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뜻이니까요.”
이제 ‘기다림’은 해외도 바라본다.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소규모 수출을 시작했고, 반응도 긍정적이다. “부산 쌀로 만든 막걸리가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진정성이 강점이 되죠.”
그에게 막걸리는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빨리 돌아가요. 저는 그 흐름에 쉼표 하나를 찍고 싶었습니다. 막걸리 한 잔에 담긴 시간이, 마시는 사람에게도 고요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해운대의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 골목. 그곳에서 조태영 대표는 오늘도 술을 빚는다. 손끝에서 시작된 온기, 기다림 속에서 피어난 풍미. ‘기다림’의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한 잔의 술로 시간의 가치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