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소프라노 박소영과 테너 김재형이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KG필) 연주에 맞춰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중 ‘입술은 침묵하고’를 부르기 시작했다. 극 중 사랑을 이룬 두 주인공 다닐로와 한나가 함께 부르는 아리아다. 무대에 오르자마자 서로 마주 보며 사랑에 빠진 연인으로 변신한 두 성악가는 완벽한 화음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양손을 맞잡고 왈츠를 추며 사랑의 기쁨을 전하자 객석에선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성악가 3인의 성량·표현력 만끽한 무대

KG필이 ‘월드클래스’ 한국 성악가들과 아름다운 하모니로 뜨거웠던 여름 밤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두 번째 정기연주회 ‘월드클래스 성악가 시리즈 2025 K-오페라 갈라(K-Opera Gala)’를 통해서다. KG필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성악가들과 함께 선보이는 ‘월드클래스 성악가 시리즈’ 첫 번째 무대로 서희태 음악감독이 지휘를 맡았다.

올해는 3명의 성악가가 KG필과 함께 했다. 박소영은 2013년 보스턴 리릭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 역으로 데뷔한 뒤 세계 유수의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성악가다, 김재형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런던 로열오페라 등 세계 주요 극장에 오르고 있다. 이들과 함께 2021년 영국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리톤 김기훈이 출연했다.

1부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으로 막을 열었다. 이어 서양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중심으로 세 성악가의 각기 다른 성량과 표현력을 만끽할 수 있는 무대로 펼쳐졌다.

김기훈은 가스탈돈의 가곡 ‘금지된 노래’,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중 ‘나는 죽는다’로 사랑의 열정과 비장함을 오가는 다채로운 표현력을 보여줬다. 박소영은 헨델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정화하는 듯한 무대를 선사했다. 김재형은 아구스틴 라라의 ‘그라나다’, 마스네 오페라 ‘베르테르’ 중 ‘왜 날 깨우는가’를 통해 압도적인 성량으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박소영, 김재형이 함께 부른 ‘입술은 침묵하고’가 1부의 대미를 장식했다.

◇한국 가곡으로 막을 연 2부…기획력 돋보여

한국 가곡으로 막을 연 2부는 오페라 아리아가 중심인 기존 성악 콘서트와 차별화했다. 김기훈은 신동수 작곡 ‘산아’, 박소영은 김성태 작곡 ‘동심초’, 김재형은 이수인 작곡 ‘내 맘의 강물’로 한국 가곡이 지닌 따뜻한 정서와 아름다움을 관객과 나눴다.

이어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듯 극적인 무대가 관객 이목을 사로잡았다. 박소영, 김기훈은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중 ‘그래, 복수다!’를 열창했다. 납치됐던 딸을 위해 복수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위로하는 딸의 절절한 감정을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이어 김재형이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으로 죽음에 앞둔 주인공의 회한을 열창했고, 김기훈은 ‘리골레토’ 중 ‘이 천벌을 받을 가신들아’로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박소영이 부른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사랑이여 내게 용기를 주소서’도 압권이었다. 독약을 먹기 전 고민에 빠진 줄리엣의 마음을 노래한 아리아다. 박소영은 독약 소품을 들고 무대에 등장해 줄리엣의 고뇌를 맑고 깨끗한 고음으로 표현하며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날 공연은 김재형, 김기훈이 함께 부른 ‘돈 카를로’ 중 ‘우정의 2중창’으로 막을 내렸다.

KG필은 KG그룹의 지속가능한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곽재선문화재단이 창단한 오케스트라다.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20, 30대의 젊고 유능한 음악 인재들로 구성돼 있다. 이날 공연에선 성악가들의 노래에 맞춰 안정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입술은 침묵하고’에선 악장 오현의 바이올린 독주가 곡의 중심을 잡았고, ‘정결한 여신’과 ‘왜 날 깨우는가’에선 각각 플루트와 첼로 연주를 부각해 곡의 포인트를 살렸다. 서희태 음악감독은 성악 전공 지휘자답게 성악가들의 노래를 유심히 살펴보며 연주의 완급을 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