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이나영 인턴 기자) 오래도록 주목할 만한 국내 소설로 황정은의 장편 소설 '百의 그림자'를 소개한다.
2005년 등단해 꾸준히 문단과 독자의 신뢰와 사랑을 견인하는 소설가 황정은은 21세기 한국 문학의 지도를 그린다면 하나의 커다란 좌표로 거론될 이름이다. '황정은풍'이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고유한 개성의 소설들로 자신의 문학 세계를 공고히 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 작가는, 마치 어떤 맹수가 먹잇감을 점찍고 한참을 노려보다가 단 한 번의 돌진으로 대상을 정확히 가격하여 쓰러뜨리듯이, 쓴다”고 표현했고 신수정 평론가는 “오늘날 우리의 젊은 세대를 관통하는 어떤 사회 역사적인 그늘에 몸을 담그고 나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가히 황정은 스타일이라고 부를 만한 경지다”라고 표현한 적 있다.
그의 첫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는 황정은이라는 압도적인 세계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언급된다. 2010년 초판 출간 당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고 지난 2022년 정제된 문장으로 복간되어 다시 독자들을 만났다. 출간 당시 "간결성이 완벽성을 보장하며, 단순성이 심오함을 입증해주는 시적 사건", "소설의 정치성 논의에서 우선적으로 거론할 만큼 중요한 텍스트"라는 평론가들의 수식과 함께 일종의 센세이션이 되었던 작품.

■百의 그림자|황정은|창비
'百의 그림자'의 세계에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을 때 그림자가 일어나 독립된 개체처럼 활보하고, 본체는 약해진다는 환상성이 전제되어 있다. 그림자는 미약하고 왜소한 인물들을 졸지에 삼켜버릴듯 아슬아슬하다. 환상이라는 표현마따나 그것은 일종의 비현실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현실의 실체와 인간이 겪는 소외를 가시적으로 현상하기 위해 동원된 것에 가깝다.
은교와 무재는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전자 상가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은교와 무재의 특별할 것 없는 경로와 대화들이 소설을 이룬다. 전자 상가는 철거가 예고된 곳이며, "슬럼"이라는 간편한 호칭이 붙여지는 곳이지만 단독성과 고유성을 간과한 현실의 말들과 달리 인물들이 아주 구체적인 삶의 내력을 쌓아온 터전이다.
획일화하고 일반화하는 현실과 언어의 무신경한 폭력성은 동어 반복 같기도, 무용한 것 같기도 한 은교와 무재의 조심스러운 대화에 의해 되물어진다. ▶"은교씨는 슬럼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 ……가난하다는 뜻인가요?/ 나는 사전을 찾아봤어요./ 뭐라고 되어 있던가요./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 하며 무재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누가요?/ 신문이며, 사람들이./ 슬럼?/ 좀 이상하죠./ 이상해요./ 슬럼./ 슬럼."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 소설은 백 개의 그림자들과 그 내막을 대체불가능한 것으로 호명하려고 하는 소설이다. ▶"가마가 말이죠, 라고 무재 씨가 말했다./ 전부 다르게 생겼대요. 언젠가 책에서 봤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대요./ 그렇대요?/ 그런데도 그걸 전부 가마, 라고 부르니까, 편리하기는 해도, 가마의 처지로 보자면 상당한 폭력인 거죠./ 가마의 처지요?/ 가마의 처지로 보자면요, 뭐야, 저 ‘가마’라는 녀석은 애초에 나와는 닮은 구석도 없는데, 하고. 그러니까 자꾸 말할수록 들켜서 이상해지는 게 아닐까요."
인물들의 도처에 도사린 불행과 그 전조들은 언제나 그들이 속한 비정하고 "허망한" 세계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들은 그림자에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에 노출되어 있다. 다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 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에는 선량함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있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반드시 전구를 하나씩 덤으로 얹어주는 오무사의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일어설 때 "노래할까요"라고 묻는 연인의 제안처럼.
신형철 평론가는 소설의 독특한 대화에 관해 ▶"여기에는 독단적인 판단이 없고 그 판단의 강요가 없으며 효율을 위한 가속이 없다. 그 대신 어떤 윤리적인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대화를 느리고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말해야할까. 언뜻 천진무구해 보이는 이 대화는 사실 전력을 다해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라고 말이다. (...) 나는 이것을 '윤리적인 무지'의 대화라고 부르고 싶다. 세속적인 이해타산에 너무나 밝은 우리들의 대화는 똑똑하게 슬프고, 그런 것들에 무지한 이 인물의 윤리적인 대화는 어쩐지 무의미해 보이면서 아름답다."고 말했다. 정홍수 평론가는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사랑의 진경을 보여주고, 정의라는 말 없이도 예리한 사회 비판에 이르고, 윤리라는 말을 앞세우지 않고도 함께 살아간다는 일의 깊은 차원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표현했다.
'百의 그림자'를 스산하고도 아름답게 이루는 것은 조심스러운 말, 말 사이의 여백, 조용하나 전력의 사랑이다. "가장 윤리적인 절망과 희망"(신형철)의 서사로 오래도록 애틋하게 남을 소설.
책속에서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하늘이 굉장하네요.
네.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역시 유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별이요?
시끄럽고 분주하고 의미도 없이 빠른 데다 여러모로 사납고.
무재 씨. 그건 인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 같아요.
도시일까요?
하며 무재 씨가 웃었다.
아무튼 이런 광경은 인간하고는 너무도 먼 듯해서, 위로가 되네요.
사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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