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원기 전 키움 히어로즈 감독.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별도 있다. 성적 부진, 리빌딩 등 수많은 사유로 서슬 퍼런 칼을 휘두르는 냉혹한 야구계에서도 박수받으며 떠나는 이들이 있다.
키움 히어로즈 감독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키움 히어로즈 감독만큼 명예롭게 떠나는 게 힘든 직업은 없다. 최근 영웅 군단을 이끌던 또 한 명의 사령탑이 내쫓겨 나갔다.
키움 히어로즈는 지난 14일 고형욱 단장, 홍원기 감독, 김창현 수석코치를 해임한다고 밝혔다. 단장, 감독, 수석코치가 동시에 물러나는 것은 냉혹하기 짝이없는 이 바닥에서도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해임 사유는 성적 부진이다. 키움은 전반기에 27승 3무 61패로,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냈다. 포스트시즌 진출은 이미 물 건너갔고, 3년 연속 꼴찌가 유력한 상황이다.
홍 전 감독은 2022년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어 3년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재계약 가능성은 희박했다.
키움 히어로즈는 2023년과 2024년 최하위에 그쳤고, 올 시즌에도 하위권을 맴돌았다. 이 때문에 홍 감독이 키움을 떠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구단 고위층은 그 시기를 두고 저울질하다가 홍 감독이 올스타전에 참가한 직후 '떠나라'고 통보했다.
구단은 쇄신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토로했다. 구단 관계자는 "(감독 해임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반기를 마친 뒤 내부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이대로는 후반기도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도약을 위한 쇄신이 필요했다"면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데 차기 감독 선임을 추진하는 모양새도 맞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키움 히어로즈 구단의 미온적인 FA 행보와 일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선수 영입에 대한 성토가 적힌 트럭이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그러나 키움 히어로즈의 이번 단장, 감독, 수석코치 해임은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책임을 온전히 이들에게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기업'이 없는 키움 히어로즈는 다른 9개 팀보다 고위층의 간섭이 심한 구단이다. 감독의 역할도 매우 한정돼 있다. 메이저리그(MLB)식 구단 운영이라고 포장했지만, 한국 야구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다.
야구계는 매년 전력 보강을 위해 '쩐의 전쟁'을 벌였지만, '스몰 마켓' 키움 히어로즈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프리에이전트(FA) 영입에 소극적이었고, 트레이드를 통해 즉시 전력감보다 유망주 수집과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 확보에 치중했다. 그렇다고 유망주와 신인 드래프트 지명 선수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도 못했다.
다른 구단의 감독은 그런 키움 히어로즈를 가리켜 "2군 수준의 팀"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홍 전 감독은 '히어로즈의 산증인'이었다. 그는 창단 시즌인 2008년부터 전력분석관, 코치, 수석코치, 감독 등으로 20년 가까이 동행했으나, 그 인연은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새삼 놀랍지도 않다. 키움 히어로즈는 어떤 사령탑과 아름답게 헤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키움 히어로즈는 감독이 떠나거나 바뀔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다. 故 이광환 초대 감독(2008년)을 비롯해 김시진(2009~2012년), 염경엽(2013~2016년), 손혁(2017년), 홍원기 전 감독(2021~2025년) 모두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재임 기간 여러 사유로 구단과 마찰이 심했던 염경엽 전 감독이 2016년 포스트시즌 탈락 후 스스로 물러난 걸 제외하면 모두 구단이 칼을 빼 들었다. 다만 염경엽 전 감독도 구단이 움직이기 전에 선수를 친 사례였다.

키움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고척 스카이돔. 뉴스1 DB © News1 이동해 기자
유일하게 계약기간을 다 채우고 떠난 감독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키움 히어로즈를 이끈 장정석 전 감독뿐이었다. 그러나 장정석 전 감독은 2019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고도 재계약에 실패했는데, 구단 내 권력 구도에 따른 피해자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감독' 자리를 꿈꾸는 야구인에게 키움 히어로즈 사령탑은 매우 달콤해 보이는 직업이다.
다른 구단과 비교해도 문턱이 낮은 편이었다. 키움 히어로즈는 고 이광환, 김시진 전 감독 이후로 구단 고위층의 개입을 수용해 온 '초보 사령탑'만 택했다.
키움 히어로즈는 박병호, 서건창,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이 뛰었고 안우진 같은 리그 정상급 투수도 있는 잠재력 있는 팀이다. 다들 자신이 잘만 손대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품고 지휘봉을 잡았으나, 아름답게 마무리한 이가 없었다.
키움 히어로즈는 포스트 홍원기를 대신할 새로운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했고, 몇 달 뒤에는 또 한 명의 야구인이 지휘봉을 잡을 것이다. 그러나 키움 히어로즈는 기존 구단 운영 방침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감독의 무덤'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새 사령탑은 "나는 이전 감독과 다를 것"이라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겠지만, 그가 잡은 건 '독이 든 성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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