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 한국 기술로 할리우드 휩쓴 K-애니를 휩쓴 ‘킹 오브 킹스' 장성호 감독이 7일 서울 강남구 모팩스튜디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권현진 기자
지난 5월 침체한 국내 극장가에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순수 한국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 K 애니메이션이 영화 '기생충'을 뛰어넘고, 북미 개봉 한국 작품 최고 흥행 수익(6000만 달러, 약 822억 7800만원)을 돌파했다는 뉴스였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그의 아들 월터에게 진정한 왕 예수의 생애를 알려주며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는 한국의 VFX 전문 회사 모팩스튜디오의 첫 번째 제작 작품이다.
모팩스튜디오의 수장이자 한국 VFX 1세대로 '한산: 용의 출현'(2021) '명량'(2014) '용의자'(2013)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건축학개론'(2012) '만추'(2010) 등 여러 작품에 참여해 온 시각 효과 전문가 장성호 대표는 '킹 오브 킹스'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 작품의 기획과 각본, 제작까지 모두 담당했다.
2015년 시작해 무려 10년을 작업해 온 결과물인 '킹 오브 킹스'는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얼핏 보면 K컬처, K영화의 전성기라는 타이밍을 잘 만나 우연히 흥행에까지 성공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킹 오브 킹스'는 애초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겨냥하고 기획됐고, 모든 단계에서 치밀한 계산과 치열한 노력을 집약한 작품이다.
미국에서의 성공을 맛본 뒤, 모국으로 돌아와 '킹 오브 킹스'의 개봉 준비에 한창인 장성호 대표(겸 감독)를 서초구 모팩스튜디오 사무실에서 만났다.

순수 한국 기술로 할리우드 휩쓴 K-애니를 휩쓴 ‘킹 오브 킹스' 장성호 감독이 7일 서울 강남구 모팩스튜디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권현진 기자

순수 한국 기술로 할리우드 휩쓴 K-애니를 휩쓴 ‘킹 오브 킹스' 장성호 감독이 7일 서울 강남구 모팩스튜디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권현진 기자
▶사실 미국 개봉할 때는 거의 긴장을 안 했다. 미국 배급사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었고 프로모션 투어를 하고 있기도 했으나 그전에 영화가 흥행이 될 거라는 지표들이 좀 있었었다. 모니터링 시사에서 평점이 좋게 나오고 사전 예매도 꽤 잘 되고 있는 상태였다. 극장주들의 배급 시사를 했을 때도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우리 기대보다 스크린 수가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우리나라 분들이 보는 시점이나 관점이 또 다를 수 있다. 미국 정서에서는 잘 됐는데 과연 한국에서도 반응이 괜찮을까 그런 게 좀 걱정이 많이 되기는 한다.
-미국에서 얻은 반응 중에 기억에 남는 좋은 반응이 있다면 무엇인가.
▶시사회 끝나고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너무 감사하다'라는 반응들이 정말 좋았다. 어린아이들이 집중해서 보고 눈물 흘리고 하는 동영상이 SNS에 많이 올라왔다. 미국 배급사가 내게 계속 보내준다. 굉장한 감동이다. 또 하나는 6월 1일에 케네디 센터에서 상영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아무 영화나 틀지 않는다. 그곳은 트럼프 가문이 운영하고 트럼프 가족이 보고 선정을 했다고 들었다. 미국 주류에서 인정하고 상영한 자체가 큰 뉴스라고 하더라.
-이런 성공이 우연이 아니더라. 기자간담회 때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한 점이 인상 깊었다.
▶물론 엄청나게 다양하고 놀라운 운과 우연히 작동했을 것이다. 어떤 작품이 잘 되는 게 그저 계획대로만 됐을 리는 없다. 그렇지만 나름의 전략은 있었다. 할리우드가 내게 그렇게 막연한 곳은 아니었다. (시각효과로)할리우드 일을 하면서 그쪽 분들하고 경험과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익숙했다. 우리하고 다른 시장의 특성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렇게 다른 시장의 특성을 나름대로 조사를 열심히 해서 이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 시장에 진입하려면 이제 갖춰야 할 기본 조건들이 있었고 그것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봤다. 그리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충족시킬 조건이라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스토리 적으로 할리우드에서 통할만한 수준을 만족시킨다는 의미일까.
▶그렇다. 할리우드 스탠다드 퀄리티(Hollywood Standard Quality), 극장에서 받아들일 만한, 개봉할 만한, 그리고 와이드 릴리즈(Wide Release, 대규모로 동시에 많은 극장에서 개봉되는 방식, 미국에서는 블록버스터 혹은 흥행을 노리는 규모가 큰 상업 영화들만이 와이드 릴리즈 방식으로 개봉한다.)를 할 만한 정도의 완성도여야 하는 거였다. 미국도 주류 영화만 있는 게 아니라 독립 영화가 많은데 그 영화들은 누가 봐도 와이드 릴리즈 수준이라고 인정을 안 한다. 소재부터 연출하는 형식 그리고 만듦새 이런 것들이 와이드 릴리즈 할 만한 것인가 하는 기준이 있게 마련이고, 그 기준안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북미에서 흥행 수익으로 '기생충'을 뛰어넘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
▶그냥 막 기쁘다 이런 것보다는 한시름 놓았다. 그래도 계획한 것들이 작동은 했구나 했다. 왜냐하면 그전에는 아무도 안 믿어줬으니까. '무슨 망상이냐' '무모한 계획이다' '이게 될 리가 없다, 안 된다' 이런 얘기만 계속 들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오기 같은 게 있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말겠다고 했는데, 그런 지점에서 '거봐 내 말이 맞았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추진했던 것은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에 대한 확신이었나.
▶시장 조사를 철저하게 했고 주류 시장으로 들어갈 만한 어떤 네트워크와 라인이 나한테는 있었으니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을 한 거다. 물론 돼봐야 아는 것이긴 하다. 확신이라고 할 순 없지만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2015년에 이 작품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10년이 걸릴 줄 알았나.
▶보통 애니메이션이 아무리 빨리하려고 해도 3년은 최소한 걸린다. 그리고 할리우드도 5년 정도 걸리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도 최대치를 5년으로 봤다. 그런데 우여곡절이 너무 많다 보니 무려 10년이 걸렸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면 시작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이해할 수 있는 예를 내가 들겠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이 작품 할래 아니면 군대 가서 복무할래' 하면 나는 군대에 갈 거라고 말할 정도다. 남자는 최고의 악몽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을 꾸는 것 아닌가. 그 정도로 힘들었다. 쉽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미 투자도 진행이 돼 있고 왠지 크리스천으로서의 소명감도 있었다. 소재 때문에라도 완성도만 갖춰진다면 큰 상징성을 획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텼다.
-사명감이 하면서 점점 더 생겼을 수 있겠다.
▶점점 더 강해졌다. 실제로 미국에서 개봉하고 나서 이번에 크리스마스 재개봉이 또 결정 났다고 배급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극장주들이 요청했다고 하더라. 기독교인들의 '나 홀로 집에'가 될 것 같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재상영되는 콘텐츠가 될 것 같다고 얘기하시더라.

'킹 오브 킹스' 포스터
-제작뿐 아니라 연출과 각본까지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래 각본도 감독도 직접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작가를 고용하고 감독도 채용하고 이렇게 계획을 했는데 이게 다 어긋났다. 방향이 너무 안 맞았다. 미국 시장을 노리고 쓰는데 작가가 쓴 시나리오는 국내 정서였다. 그래서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처음에는 연출도 김우형 감독에게 맡기려고 했고 최대 공동 연출을 하려고 했는데 김우형 감독이 '이 소재랑 주제는 네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데 당연히 네가 해야지 나는 감독까지는 못 할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단독으로 감독을 한 거다.
-케네스 브래너와 오스카 아이삭, 우마 서먼, 포레스트 휘태커, 피어스 브로스넌, 마크 해밀 등 영어판 캐스팅도 화려하지만, 이병헌, 이하늬, 진선규, 양동근, 차인표 등을 캐스팅한 한국판 캐스팅도 초호화다. 영어판은 제이미 토머스의 역할이 크다고 들었는데 한국판은 어떻게 이런 캐스팅이 가능했나.
▶크리스천 배우들이 대부분인데, 이성미 씨랑 송은이 씨가 도움을 많이 주셨다. '문미엔'이라고 문화 미디어 엔터 쪽 예배 모임이 있었다. 그때부터 친분이 있었고 그분들은 내가 이걸 제작하는 걸 알고 계셨다. 이제 한국에서 개봉 준비를 해야 하는데 캐스팅을 의논드렸다. 사실 미국 개봉 전에 보여드렸다. 그래서 미국에서 막 성과가 나니까 '와 신난다' 이렇게 캐스팅이 된 게 아니고 그전부터 협의가 잘 돼서 (해당 배우들이)하게 되신 거다. 그리고 이병헌 배우 같은 경우는 '범죄도시' 장원석 대표의 힘이 컸다. 장원석 대표는 그가 처음 영화판에 들어왔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다.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애니메이션 제작을 할 예정인가.
▶그렇다. 애니메이션 당분간은 좀 더 만들어 볼 생각이다. 영화든 실사 쪽도 물론 관심이 있지만 일단은 실사 쪽을 하려면 할 수 있고 잘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이미 너무 훌륭한 감독 작가들이 즐비한데 굳이 내가 그 레드오션에 뛰어들어 생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했던 것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감의 근거가 뭐였나.
▶뭐랄까. 재능 있는 분들이 이 바닥에 뛰어들 수 없는 척박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내게는 블루오션으로 보였다. 국내 애니메이션계는 영유아 물에 특화돼 있고 재능 있는 분들은 다 이미 픽사나 디즈니, 드림웍스에 취업해 가셨다. 그래서 여기서는 지금 내가 하면 왠지 잘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매우 큰 시장이다. 사실은 터지지 않았을 뿐이다.

순수 한국 기술로 할리우드 휩쓴 K-애니를 휩쓴 ‘킹 오브 킹스' 장성호 감독이 7일 서울 강남구 모팩스튜디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권현진 기자
-'킹 오브 킹스'는 개봉 타이밍도 좋은 것 같다. 마침 K 애니메이션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인 데다, 미국 작품이지만 K팝 문화를 애니메이션에 접목한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들도 주목받고 있다.
▶내가 '킹 오브 킹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K 콘텐츠 열풍 이런 건 없을 때였다. 그러니까 더 무모하게 보였을 거다. 그런데, 그사이에 BTS가 터지고 '기생충'이 터지고 얼마 전에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도 받았다. 이게 되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
-한국 영화 시장이 많이 위축된 상황인데, 여름에 개봉한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엄청난 계산 속으로 한 건 아니다. 미국에서 개봉했는데 한국에서 최대한 빨리 개봉하려고 나름대로 시기를 잡다가 마이너한 영화가 아니라 메이저한 영위치를 포지셔닝을 해 해보자, 했다. 그래서 아예 여름방학에 온 가족이 와서 어린아이를 포함해서 볼 수 있게 해보자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면 그냥 애들이나 보는 마이너한 어떤 장르처럼 취급되는 게 되게 싫다. 그래서 대작들 사이에서 우리도 대작처럼 해보자, 하면서 만용을 좀 부려봤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비전이 있다면.
▶전 세계 시장에서 소구 될 수 있는 작품을 하자라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애니메이션은 그런 면에서 장점이 있다. 한국적인 소재나 색채를 배제하지는 않고 활용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인터네셔널하고 유니버설한 코드로 작품을 계속 기획하고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한국적 소재를 쓴다 해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AI 때문에 경천동지할 대 급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제작 방식 자체가 달라질 거다. 그래서 시각적인 완성도는 이제 허들이 낮아질 거다. 그래서 기획이나 연출 이런 쪽이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