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 소속 유럽 지도자들과 통화한 사실을 전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가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조달에 도움이 된다면서 유럽 정상들에게 구매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러시아가 유럽연합(EU)에 연간 11억유로(약 1조 7855억원)어치의 원유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통화는 의지의 연합 소속 유럽 정상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을 논의한 직후, 회의 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진행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표로 전화를 걸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참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러시아산 원유의 주요 유럽 수입국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로 이들 국가는 EU 차원의 금수 조치에서 예외로 남아 있다고 짚었다. 핀란드 에너지 클린 에어 연구센터는 유럽과 주요7개국(G7) 중 인도·튀르키예 등에서 정제한 러시아산 석유제품을 우회 수입하는 국가가 있다면서, 이 역시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러시아의 전쟁 노력에 자금을 지원하는 중국에도 경제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반미·반서방 연대를 강화한 이후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27일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일환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구입하는 인도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세컨더리 제재다. 하지만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 매슈 휘터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2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관세) 협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협상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제재를 가할 경우 중국의 보복을 야기해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이나 외교 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미국이 신중하게 판단·접근하고 있다는 동조 의견도 나오지만, 미국이 직접 중국에 제재를 가하지 않고 유럽만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알래스카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 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중재했지만 성사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까지 포함한 3자 회담 역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강력한 대(對)러시아 제재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 갖고 “러시아에 2단계나 3단계(제재)는 아직 하지도 않았다”며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는 그에 만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만족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여러분은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 발언을 되풀이한 것으로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나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를 봤을 때, 러시아나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보다는 헝가리·슬로바키아 등 예외국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유럽-러시아-중국 간 에너지·외교 지형이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된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평화협상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간헐적으로 처벌하겠다고 위협해 왔을 뿐,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유럽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위선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