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사진출처=구글지도)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최근 워싱턴 주재 유럽 외교관들에게 ‘섹션 333’(Section 333) 권한에 따른 안보지원 프로그램에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지원을 받지 않았던 국가까지 포함해 워싱턴 내 수십개 유럽 대사관 관계자들이 미 국방부 주재 회의에 참석해 관련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러시아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있는 동유럽 최전선 국가들의 군대 훈련 및 장비에 자금을 지원하는 국방부 프로그램으로,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선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 예산을 요청하지 않아 사실상 사업 종료가 확정됐다고 FT는 부연했다. 기존에 승인된 잔여 예산은 내년 9월까지 사용할 수 있다.
미 의회 예산국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2년 유럽에 투입된 ‘섹션 333’ 자금은 약 16억달러로, 전 세계 프로그램 집행액의 29%에 달했다. 주요 수혜국이었던 발트 3국은 이번 조치로 수억달러의 군사 지원을 잃게 될 전망이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2020년에 별도로 설립된 프로그램 ‘발트안보이니셔티브’(BSI)의 미래 또한 존속 위기에 처했다고 FT는 전했다. 이 프로그램 역시 내년도 추가 예산 요청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미 의회가 2억 2800만달러를 승인했다.
마크 몽고메리 전 미 해군 제독은 “미국의 군사 지원 상실은 발트 3국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들은 이들 국가가 독자적으로 방어 능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방부. (사진=AFP)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 자원을 아시아·태평양으로 돌리려는 구상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정책국장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억제 수단 강화를 강조하며 최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일시 중단 검토를 주도한 바 있다. 이는 대만 해협 갈등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재배치로, 유럽 지원 축소가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유럽 측은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이번 조치가 유럽 안보 구조 전반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데다, 나토 내부 결속에도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유럽 정부들은 당혹감을 표하며 미 정부로부터 추가적인 세부 정보를 얻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일부 외교관들은 “상당한 안보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자국 예산으로 이를 메울 수 있을지, 혹은 유럽 안보 핵심 요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
한 외교관은 “만약 그들(미국)이 잔혹하게 대응한다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자금 일부는 나토를 통해 (지원 대상 국가들에) 전달됐기 때문에 나토 역시 명백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다른 외교관은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 원조를 대폭 삭감한 결정을 언급하며 “(그에 더해) 많은 우려와 불확실성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일고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진 샤힌 의원은 이번 결정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시도에 잘못된 신호를 주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폴란드에 주둔 중인 미군 1만명을 유지하고, 필요시 추가 파병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동유럽 일부 국가에는 군사 지원을 축소하고, 일부에는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신호를 동시에 보내는 상반된 행보여서, 관세처럼 군사·안보 지원도 차별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