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총 '4조 달러' 돌파… 퇴직연금까지 넘본다

해외

이데일리,

2025년 7월 20일, 오후 02:32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의 가치가 처음으로 4조 달러(약 5500조원)를 돌파했다. 미국 가상자산 3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수천억 달러 규모의 월가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지니어스법 서명식을 진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FP)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디지털 자산 데이터 제공업체인 코인게코 자료를 인용해 전일 기준 전체 가상자산 시가총액이 4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치인 12만3000달러(약 1억 7100만원)를 넘어서고, 이더리움, 솔라나 등 여타 가상자산들도 가격이 급등한 결과다.

투자은행(IB) 벤치마크 컴퍼니의 마크 팔머 애널리스트는 “가상자산 3개 법안의 미국 의회 통과한 것은 가상자산 대중화를 향한 중대한 전환점”이라면서 “그동안 명확한 규제를 기다리며 관망하던 기관 자금이 이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니어스법, 트럼프 서명에 법제화 완료

전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가상화폐의 일종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틀을 마련하는 ‘지니어스 법’(Genius Act)에 서명, 법제화를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지니어스 법에 대해 “글로벌 금융과 암호화폐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굳히는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지니어스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미국의 자금세탁금지법과 제재법을 준수하고, 미국 달러와 단기 국채 등 유동성 자산을 담보로 보유하도록 하고 있다. 즉, 스테이블코인의 법정 정의, 발행 절차, 공시 의무 등을 규정해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규제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달 상원을 통과했으며, 지난 17일 미 하원 본회의에서 가결처리됐다. 같은 날 하원에선 지니어스 법 외에도 ‘가상자산 시장 명확성 법안’(CLARITY Act), ‘CBDC 감시 국가 방지법안’(Anti?CBDC Act)이 통과돼 상원 의결 절차를 앞두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 명확성 법안’은 가상자산을 정의하고 규제 당국을 정하는 등 가상자산 규제를 명확히 하고 있으며, ‘CBDC 감시 국가 방지법안’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발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 트럼프, 퇴직연금 시장까지 개방하나

가상자산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11월 당시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으로 가상자산 시총은 8000억 달러(약 1114조원)대까지 급락했고, 비트코인 가격은 1만6000달러(약 2229만원)대로 떨어졌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가상자산 규제 강화 기조와 맞물려 많은 투자자들이 가상자산 시장에서 이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가상자산 업계로부터 수억 달러 규모의 대선 자금을 지원 받았고, 그는 과거 가상자산에 대해 회의적 기조에서 벗어나 “미국을 전 세계 가상자산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재집권과 함께 가상자산 상품을 직접 출시하고, 친(親)가상자산 성향의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자산 및 AI 차르인 페이팔 전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 억만장자 데이비스 색스는 엑스를 통해 이번 가상자산 3법 의회 통과에 대해 “가상자산 업계의 엄청난 승리”라고 평가했다.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3개 법안이 은행, 자산운용사 등 기관들의 투자를 촉진하고 이들이 자체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로 기대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씨티그룹, JP모간 체이스의 수장들은 최근 지니어스 법안이 공식적으로 법률로 확정되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조 달러(약 1경 250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을 가상화폐와 사모펀드 업계 등에 개방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앞서 FT는 지난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퇴직연금 제도인 401k를 전통적 주식이나 채권 외에 가상화폐와 금, 사모펀드 같은 대안 투자에도 개방하는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401k는 미국의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가입하는 퇴직연금으로, 대부분 뮤추얼 펀드를 통해 상장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이를 가상자산이나 사모펀드에 개방한다는 것은 “상당히 급진적인 전환”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안전 장치 없다”…이해 충돌 비판도

가상자산 3개 법안 하원 통과를 두고 비판 여론도 거세다. 가상자산이 전통 금융과 긴밀히 연결되는 것은 시장 붕괴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소속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지니어스 법은 스테이블코인이 전체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민간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경제 권력이 소수에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가가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일가가 소유한 가상자산 기업 월드리버티파이낸셜(WLF)은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남겼다. 지니어스 법안에는 의원이나 그 가족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사적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 있지만 대통령과 그 가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편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크립토닷컴 등 주요 가상자산 기업들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 미국 정부의 여러 소송에 직면했지만,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이들 소송은 모두 취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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