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책임자(CEO)(사진=AFP)
AI 스타트업 윈드서프에게 지난 11일(현지시간)이 그런 날이었다. 오픈AI가 회사를 30억달러(4조 1805억원)에 인수한다는 소문이 회사를 휩쓴 가운데 수백명 직원이 샴페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해진 소식은 바룬 모한 CEO가 구글로 이직하면서 더글라스 첸과 같은 일부 핵심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을 함께 데려갔다는 충격적 뉴스였다.
기업들이 반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회사를 인수하지 않고 핵심인력만 빼가고 기술은 라이선스로 확보하는 이른바 ‘역인수’(acquihire in reverse) 방식이다. 일부 직원은 눈물을 흘렸고, 사무실에는 정적만 흘렀다.
그러나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같은 사무실에 모인 직원들에게는 다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가 경쟁 AI 스타트업인 ‘코그니션’에 인수된다는 것이었다.
◇기사회생한 윈드서프, 고난의 시기 맞은 스케일AI
모한의 구글행 이후 윈드코프의 임시 CEO로 임명된 제프왕은 19일 엑스(X, 옛 트위터)에서 그간 협상의 막전막후를 상세히 밝혔다. 구글은 윈드서프의 기술 라이선스를 확보했지만, 윈드서프가 다른 기업에도 기술을 자유롭게 라이선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왕 CEO는 “훌륭한 인재를 일부 잃었고 사기에도 큰 타격을 입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식재산권(IP), 제품, 그리고 뛰어난 시장진입전략(GTM)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며 “자금을 다시 조달하거나, 매각하거나, 독자적으로 계속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저녁 왕 CEO는 코그니션의 CEO인 스콧우와 CTO인 러셀 카플란으로부터 인수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 사이 양측은 인수 조건을 조율하고 남은 엔지니어를 만나 이탈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그는 “코그니션과 윈드서프는 매우 보완적인 팀”이라며, “코그니션은 엔지니어링에 과투자했고 GTM과 마케팅엔 과소투자했지만, 우리는 그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팀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윈드서프는 코어 엔지니어링 팀이 빠져 있는 상태였으며, “AI 엔지니어링 분야에 있어 코그니션보다 나은 팀은 없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핵심 인력이 유출된 이후에도 윈드서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데이터’를 지목했다. 윈드서프의 주력 제품은 통합 개발 환경(IDE)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사용하는 핵심 코딩 도구이다. 특히 IDE는 AI모델의 후처리(post-training) 단계에서 차별성을 확보하는 핵심 데이터 공급원으로 개발자의 모든 키 입력, 실행, 디버깅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정밀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두 CEO는 윈드서프 직원 모두를 책임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인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아직 1년을 못 채운 직원들도 지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모든 직원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발표에 대해 전 직원은 기립박수를 응답했다.
모든 기업이 윈드서프처럼 좋은 결말을 맞는 것은 아니다. 최근 실리콘밸리 인재전쟁의 시발점이 된 메타는 스케일AI의 창업자이자 CEO인 알렉산더 왕을 랩총책임자로 영입했다. 이를 위해 메타는 무려 143억달러(19조 7000억원)을 스케일AI에 투자했다.
왕 CEO는 6월 전 직원 회의에서 회사를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퇴장을 배웅했다. 한 직원은 “디즈니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왕 CEO가 떠난 직후, 오픈AI와 구글은 스케일AI와의 계약을 중단했다. 이번 주에는 전체 직원의 14% 감원되는 등 타격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에겐 돈 안쓴다” 오픈AI 지적이 저커버그 불붙여
아이러니하게도 메타의 공격적 인재영입 배경에는 오픈AI 수석연구책임자의 한 마디가 있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 봄 마크 저커머그 메타 CEO는 마크 첸(오픈AI 수석연구책임자)과 친목 차원의 대화를 나눴고 이 자리에서 “메타는 하드웨어에는 수천억을 쓰면서 사람에겐 너무 적게 투자한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이 대화가 저커버그 CEO에게 불을 지피며 지금의 인재전쟁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저커버그 CEO는 직접 전 세계 최고 AI 연구자 리스트를 만들고 이메일과 문자, 왓츠앱을 통해 연락했다. 어떤 인재는 직접 자신의 타호 호수 별장이나 팔로알토 자택으로 초대해 직접 설득에 나섰다.
그 결과 오픈AI 출신 연구인원들이 줄줄이 메타로 이직했다. 물론 4년간 3억달러, 첫해에만 1억달러에 달하는 파격적 제안에도 이직을 거절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오픈AI의 위기감과 경계감은 상당하다.
첸은 최근 내부 메신저에 “우리집에 도둑이 들어와 무언가를 훔쳐간 듯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최근 메타의 채용공세로 오픈AI 핵심 인력이 빠져나간 것을 가리키며 이같이 표현했다. 그는 “우린 놀고 있지 않으며”며 보상 체계 조정과 ‘창의적 보상 시스템’을 검토 중이라고 강조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 역시 지난 6월 직원들에게 “우린 선교사(missionary)다. 용병(mercenary)이 아니다. 선교사는 결국 이긴다”고 밝혔다. 메타의 공세를 비판하는 동시에, 직원들에게 ‘금전적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강조한 셈이다.
이에 대해 메타 측은 인재들이 단순히 돈 때문에 회사를 옮긴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저커버그 CEO는 “메타 슈퍼인텔리전스 랩은 업계 최고 수준의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며, 연구자 1인당 컴퓨팅 파워도 가장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