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호화폐 '위믹스'(WEMIX) 유통량 조작 의혹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장현국 전 위메이드 대표이사가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1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5.7.15/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직업 특성상 극도로 감정을 자제하는 판사들은 판결문에도 건조한 사실관계와 법리적 판단만 나열하는 경향이 짙다. 형사재판의 경우 판사는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검사와 피고인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변호인 사이에서 사실관계 판단과 법적 해석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판결문 사이에서도 가끔 감정의 부스러기가 튀어나온다.
"그나마 판사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형사 판결문의 '양형 이유' 부분이다."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책 '어떤 양형 이유'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판사들도 자신이 왜 이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사건 관계자와 국민에게 설명할 창구가 필요한데, 그 통로가 '양형 이유'인 셈이다.
다만 피고인에게 죄가 없다면 양형 이유가 따라붙지 않아 통상 법관은 자신의 의견을 따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난 15일 한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김상연 부장판사)는 당일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장현국 전 위메이드 대표(현 넥써쓰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 전 대표는 지난 2022년 초 자신이 발행한 위믹스코인 유동화(현금화)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뒤, 실제로는 그해 2~10월 외부에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약 3000억 원 상당의 위믹스코인을 추가로 현금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자 위믹스코인 시세와 위메이드 주가가 나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허위로 '위믹스 코인 유동화 중단'을 공지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검찰이 수사한 뒤 재판까지 이어졌다.
재판부는 장 전 대표의 범죄사실이 증명되지 않아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장 전 대표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가상화폐의 경우 이 법으로는 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부분만 규정하고 있는데, 가상자산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검찰도 이런 점을 인지해, 장 전 대표가 운영하는 위메이드 주가와 위믹스코인 가치가 일부 연동돼 움직인다는 점을 고리로 유죄를 입증하려는 전략을 짰다. 위믹스코인에 대한 발언일지라도 위메이드 주가에 영향을 미치니 사실상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해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원은 자본시장법 안에서는 장 전 대표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대신 김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모두 읽어 내려간 뒤 이런 말을 덧붙였다.
"현재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제정됐습니다. 사건 당시에는 (가상자산이) 규제 사각지대에 있어 규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중략) 피고인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제정된 현재 이 사건 공소사실 같은 행위를 했다면 어떤 법적 평가를 받을지는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이 재판부의 판단 범위가 아니라 따로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2023년 국회는 가상자산 유통량과 이용자 규모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를 관리할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고 보고, 가산자산이용자보호법을 제정했다. 이 법의 취지는 가상자산시장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가상자산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 법은 국회를 통과한 지 1년이 지난 2024년 7월부터 시행됐다. 검찰이 기소한 장 전 대표의 발언은 이보다 2년 전에 나온 만큼 형벌불소급 원칙에 따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김 부장판사는 바로 이 빈틈을 지적하며, 장 전 대표를 향해 일종의 쓴소리를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법이 제정·시행되기 전에 일어난 일을 법원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 전 대표처럼 단 '한마디'로도 가상자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손이라면 다른 시장 참여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발언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최근 서울남부지법으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혐의로 코인업계 종사자들이 연이어 기소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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