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의 민족인데 어째서"… 대부분 거리 공연은 여전히 '불법'

사회

뉴스1,

2025년 7월 15일, 오전 06:10

11일 오후 청계천 모전교 일대에서 이뤄진 길거리 공연을 시민들이 모여 관람하고 있다. 2025.07.14/뉴스1 © 뉴스1 권준언 기자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나처럼 그들도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가 봐요) 지난 11일 금요일 서울 중구 청계천 모전교에선 카펜터스의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낮 최고 36도를 기록할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지만, 공연이 이뤄지던 청계천 일대엔 산들바람이 솔솔 불었다. 바쁜 일상에 눌린 시민들은 노랫말처럼 음악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대학 선후배 모임 참석을 위해 이동하던 강 모 씨(57)는 음악 소리를 듣고 청계천 산책로로 내려왔다. 강 씨 일행이 손뼉을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자 공연자는 인사로 화답했다. 팁 박스에 만 원을 넣고 자리를 떠나던 강 씨는 "외국에 가면 길거리 공연에 팁도 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며 웃음 지었다.

그러나 현재 서울 도심에서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거리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제한돼 있다. 거리 공연장은 청계천과 같은 '공식 야외 공연장'으로 한정돼 있고 이외의 야외 공연은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길거리 공연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통해 소음 문제 등을 방지하면서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게 장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길거리 공연, 대부분은 현행법상 '불법'…아쉬움 표하는 시민들
15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설공단은 지난 1일부터 일반인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공연할 수 있는 장소를 기존 5곳에서 삼일교 한 곳으로 축소했다고 밝혔다. '서울거리아티스트연합' 소속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5곳에서 공연이 가능하지만 소속되지 않은 일반인 공연자는 삼일교에서만 공연이 가능하다.

이같은 소식에 공연을 즐기던 시민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양질의 길거리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근에서 퇴근해 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지켜보던 최 모 씨(50)는 "한국 사람들이 흥이 많은 민족인데 왜 하지 못하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소음은 도심 집회가 더 심한데 음악 소리가 뒤섞이지 않는 선에서라면 이런 공연은 허가를 많이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최 씨의 아내인 배 모 씨(50·여)도 "강릉 월하거리에 가면 이것보다 훨씬 시끄럽게 하는데 서울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면서 "거주지 근처라도 괜찮으니 주말엔 이런 공연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일주일간 서울로 여행을 왔다는 소피아(22·여)는 한국 길거리 공연은 대부분 불법이라는 기자의 말에 "통행 불편이나 소음 문제가 심하지 않은, 듣기 좋은 공연이 문제가 되는 것은 유감(It's a shame)"라며 "프랑스에선 길거리 공연이 일상적이다. 일상 속 이런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현행법상 거리 공연은 대부분 불법이다. 도로법 규정상 점용 허가를 받지 않고 물건 등을 도로에 내려두면 제곱미터(㎡)당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고, 구청은 도로에 있는 적치물을 제거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공원도 마찬가지다. 공원법상 야외 공연은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로 분류될 수 있어 단속 대상이다.

각 자치구 차원에서 야외 공연장을 관리하고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인사동·대학로 일대에서 일상적으로 길거리 공연이 이뤄지는 종로구의 경우에도 구청에서 관리하는 야외 공연장은 남인사마당·마로니에공원 공연장 단 두 곳이다. 신촌 명물거리가 위치한 서대문구도 구청 관할 야외 공연 장소는 세 곳에 불과하다.

11일 오후 청계천 모전교 일대에서 이뤄진 길거리 바이올린 공연을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수십 명의 시민들이 멈춰 서서 관람하고 있다. 2025.07.14/뉴스1 © 뉴스1 권준언 기자

"공연 장소 늘어나야" vs "룰 지키지 않는 뮤지션들 책임도"
길거리 뮤지션들은 길거리 공연 장소가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활동명 '뮤지션 어텀'으로 재즈와 리듬 앤드 블루스 공연을 하는 이은혜 씨(44·여)는 "청계천의 경우엔 협동조합이 공연 일정을 수합해 배분해 특정 팀이 독식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여전히 공연 접수 경쟁은 있다"며 "청계천처럼 명확한 룰이 정해진 공연 장소가 늘어나 많은 뮤지션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만 거리 공연을 진행하는 뮤지션들의 무분별한 소음 발생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매주 청계천에서 기타와 바이올린 공연을 진행하는 윤현로 씨(39)는 "뮤지션들이 적을 때는 암묵적 규칙이 작동했다"며 "과거 연남동도 길거리 공연자들이 적었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공연자들이 경쟁적으로 볼륨을 더 크게 높여 민원이 많이 들어와 공연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대학로에서 37년째 통기타 공연을 하는 윤효상 씨(58)는 "버스킹은 서로 어우러져서 관람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며 "(나는) 지금껏 육성으로 공연을 해 와서 옆으로만 가면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앰프를 써서 소리를 경쟁적으로 높이면 서로 공연에 피해가 되지 않느냐. 배려심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멜버른·런던은 '버스킹 허가제'로 체계적 관리… "문화 체험 기회로 활용해야"
국내에는 길거리 공연에 대한 '단속' 규정만 대부분이지만 해외에선 길거리 공연을 지역 문화이자 관광 상품으로 장려하면서도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길거리 공연을 관리하고 있다. 길거리 공연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무분별한 소음 공해를 방지하는 동시에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 멜버른시는 시 조례를 근거로 '버스킹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허가받은 버스커는 앰프를 사용해 공연할 수 있고 공연 중 모금은 물론 음반 판매도 가능하다. 멜버른시의 버스킹 허가 단계는 4단계로 구분된다.

'일반 구역 허가(General Area Permit)'를 받으면 일부 구역을 제외하고는 공연을 할 수 있다. '프리미엄 버스킹 허가(Premium Busking Permit)'는 6개월 이상 일반 구역 허가를 받은 이력이 있으면 신청이 가능하며 라이브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해당 허가를 받으면 쇼핑몰 등 제한 구역에서도 공연이 가능하다. 외국인도 '단기 허가(Short Term Permission)'를 받으면 길거리 버스킹이 가능하다.

또한 영국 런던에선 대부분의 구역을 제외하고는 길거리 공연이 가능하다. 예외적으로 캠던(Camden) 자치구 등 일부 중심 지역 공연이 금지돼 있지만 이 또한 150파운드를 지불하고 자치구로부터 허가증을 받으면 2년간 공연이 가능하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특별시 거리공연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 2017년 제정됐지만 길거리 공연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리·지원 방안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길거리 공연 활성화를 위해 기관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단 지적이 제기된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해외의 경우 길거리 공연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이것이 문화 체험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며 "결국 소음 민원 등의 문제를 관리해서 해외처럼 양질의 공연 기회를 제공하면 좋은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길거리 공연 관련 조례 확충 필요성에 대해서는 "조례가 법을 앞서나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관광특구 지정을 한다거나, 규제개혁을 통해서 길거리 공연에 대한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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