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경로당의 모습. 2025.7.11/뉴스1 © News1 강서연 기자
"여긴 회원제여서 1년에 3만원 내야 사용할 수 있어."
"에어컨이 5일째 고장 났거든. 다들 덥다고 나갔지, 뭐."
"여기가 무더위 쉼터로 지정돼 있어? 여긴 그냥 지나가는 데 아냐?"
서울 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간 이번 주. 서울 일대 무더위 쉼터 인근에서 만난 노인들은 무더위쉼터를 사용하기 힘든 가지각색의 이유를 털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쉼터의 종류에 따라 평소엔 회원제인 곳도 있는 등 각자 운영 방식이 다르다 보니, 20대인 취재진도 감을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쉼터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마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80대 남성이 "어려워서 안 간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뉴스1 취재진은 지난 10~11일 서울 종로구·마포구·용산구의 동주민센터·복지관·경로당·은행 등 무더위 쉼터 17곳을 방문했다. 무더위 쉼터는 아무나 사용하기엔 평소에 '회원제'로 운영돼 문턱이 높거나, 기존 민원실들과 겸해서 사용해 시민들이 모르는 곳들로 나뉘었다. 간혹 이름이 무색하게도 에어컨이 고장 난 무더위 쉼터도 있었다.

네이버지도(왼쪽), 카카오맵(오른쪽) 애플리케이션 검색 갈무리
취재진은 무더위 쉼터를 방문하기 전 일단 네이버 지도·카카오맵 등 통상적으로 시민들이 사용하는 지도 앱을 켰다. '무더위 쉼터'를 검색하자, 근방에 있는 무더위 쉼터들의 목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방문할 수 있는 유형의 쉼터인지, 특정 계층만 사용할 수 있는 쉼터인지는 검색되지 않아 방문해도 되는지 꺼려졌다.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선 무더위 쉼터는 누구나 이용가능한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과 경로당 등 '특정 계층 이용 시설', 생활공간인 은행 등과 협업해서 마련된 '민간 시설' 등 크게 3개 유형으로 나뉘는 것으로 안내됐다.

11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경로당의 모습. 2025.7.11/뉴스1 © News1 강서연 기자
'경로당' 무더위 쉼터는 회원제…"개방해 놓아도 외부인이 안 온다"
10일 방문한 종로구 일대의 경로당엔 70~80대 노인들이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고 있었다. 각 경로당엔 하루에 열댓명의 회원들이 온다고 했다.경로당인 만큼 노래 교실, 강의 등 프로그램이 많아 회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듯했다.
다만 경로당의 경우 평소엔 회원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무더위 쉼터로 사용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가 자유롭게 드나들긴 부담스러웠다. 일반 경로당 이용자들은 1년에 몇만 원의 회비를 내고 있어, 기존 이용자들이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겠다는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는 분쟁도 생긴다는 게 행정안전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외부인에게 개방돼 있는 경로당들임에도 그저 더위를 식히려 찾는 노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외부인 입장에선 경로당의 특성상 자주 방문한 주민들끼리 이미 친해져 있어, 땀을 식히려고 자유롭게 드나들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창신동에 있는 한 경로당에서 만난 80대 여성은 "회원 아닌 사람이 경로당에 들어와 있는 건 아직 못 봤다"며 "쉼터라고 해도 안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용산구의 한 아파트 경로당 회장은 "아파트 주민이 아니고, 경로당 회원이 아니더라도 아무나 다 와도 돼서 며칠 전에 방송으로 공지도 했고 우린 다 받아준다"며 "그런데 다른 데선 오지도 않고 주민들만 온다"고 말했다.

11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경로당 앞에 '회원이 아니어도 이용 가능하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2025.7.11/뉴스1 © News1 강서연 기자
이틀간 취재진이 방문한 무더위 쉼터 경로당 8곳은 물을 찾거나 잠시 쉬어가도 되냐 물어보는 노인들을 막지 않는다고 했다. 용산구의 한 아파트 경로당 앞엔 '폭염 특보시 경로당 무더위쉼터는 회원이 아니어도 이용가능하다'는 문구가 붙었다.
실제로 2023년 대한노인회 경로당 운영규정이 개정되면서 행정안전부 폭염 대책 기간엔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게 됐지만, 이를 모르는 노인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당고개 경로당 회장인 김인식 씨(85·남)는 "교육을 받기론 65세 이상이 이용자이긴 한데, 더워서 물 좀 먹고 가자는데 어떻게 '안 돼요' 할 수 있냐"며 "회비를 안내도, 쉬어가신다거나 하는 건 나이 제한 없이 누구나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 시기에 경로당을 자유롭게 찾아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노인들은 '퇴짜를 맞을 바엔 길거리 그늘에 있는 게 낫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80대 남성은 "경로당이나 쉼터는 아무나 못 들어가게 한다"며 "그냥 여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무더위 쉼터는 에어컨이 고장 나 있거나, 영업시간이 시작됐음에도 전등·에어컨이 켜지지 않기도 했다. 10일 방문한 종로구의 한 주민센터는 에어컨이 고장 난 지 약 5일이 지난 상태였다. 80대 노인 6명가량이 선풍기 4대와 부채로 더위를 식히고 있었지만 내부는 시원하지 않았다. 11일에 찾은 마포구 한 아파트의 경로당도 영업시간인 9시를 훌쩍 넘겼음에도 내부 전등이 다 꺼져 있어 썰렁했다.

11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 한 주민센터에서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모습. 2025.7.11/뉴스1 © News1 강서연 기자
'모두 이용 가능' 주민센터는 민원실과 쉼터 겸용…"여기가 쉼터야?"
그렇다면 평소에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주민센터, 사회복지관 등 공공시설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는 사정이 어떨까.
익선동에 위치한 종로 1, 2, 3, 4가동 주민센터는 대기석 6개 정도가 있는 민원실을 무더위 쉼터로 사용 중이었다. 직원에게 물어보기 전까진 기자도 무더위 쉼터라고 전혀 인지하지 못할 만큼의 협소한 공간이었다. 직원은 "쉼터 이용하러 오셨는데 자리가 없으면 30명 수용 공간이 있는 2층, 50명 이상이 수용 가능한 3층에도 안내를 해드리고 있는데 올해는 2·3층을 이용하신 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이 찾은 5곳의 다른 주민센터나 사회복지관도 별도의 공간을 쉼터로 마련한 게 아니어서 공간은 대체로 좁았다.
종로 5, 6가동 주민센터는 민원실 입구 양옆으로 놓인 12석가량의 소파 공간을 무더위 쉼터로 사용하고 있었다. 창신3동 주민센터는 전광판에서 무더위 쉼터임을 안내하고 있었으나 별도의 쉼터가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문의하니 "민원 창구 앞 대기 공간이 다 무더위 쉼터"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더위를 식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민원실 등을 무더위 쉼터로 활용하다 보니, 이용자들이 정작 이곳이 무더위 쉼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종로구에 위치한 한 복지관에선 "무더위 쉼터가 어딘지 물어보러 오시거나 이용한 분은 없었다"고 했다. 숭인1동 주민센터를 찾은 한 70대 남성은 '여기 1층이 쉼터인 걸 아셨냐'는 질문에 "여기는 그냥 지나가는 데지, 쉼터는 아닌 걸로 안다"고 하기도 했다.

11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 한 주민센터의 모습. 2025.7.11/뉴스1 © News1 강서연 기자
가장 빠르고, 편하고, 시원한 쉼터는 '은행'…행안부, 무더위쉼터 업무협약 체결도
무더위 쉼터 시행 후 수년이 지나면서 이런 미비점들을 일정 부분 개선할 수 있도록 쉼터 종류를 늘리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실제로 취재진이 찾은 무더위 쉼터 중 가장 적은 도보 이동으로 시원하면서도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는 곳은 도심 곳곳에 있는 '은행'이었다. 동주민센터 민원실보다 비교적 공간도 넓고 쾌적했다. "더워서 쉬다 가려 왔다"는 한 마디에도 대부분의 직원이 친절하게 "편하게 쉬다 가시라"고 안내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월부터 시중 은행과 마트 등과 무더위쉼터 이용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11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서울 용산구 한 은행의 모습. 2025.7.11/뉴스1 © News1 강서연 기자
전문가들 "쉼터 선정 시 이용자 경제력 등 특성 검토 떨어져"…노인 대상 홍보도 촉구
전문가들은 무더위 쉼터를 찾는 이용자들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쉼터 공간 선정이 대체로 접근성을 낮췄다고 지적했다. 친밀한 관계가 아닌 노인들도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인지, 단순히 민원실에 에어컨만 틀어놓는 게 아니라 노약자가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현재 무더위 쉼터는 지역 특성이라든지, 지역 주민들이 실제 모이는 장소가 어디인지, 경제력이나 관계성에 따라서 이용 여부가 달라지지 않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떨어지는 편"이라고 꼬집었다.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는 곳들을 무더위 쉼터로 일단 최대한 많이 개방하고 좋은 환경으로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게 필요하단 제언도 나왔다.
김 활동가는 "사람들이 평소에 많이 이용하는 곳들을 최대한 개방하고 좋은 환경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무더위 쉼터 개선 방안 중 하나"라며 "동주민센터의 경우 민원인들이 와서 접수를 하고 가는 식으로 구조화된 공간인데,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게 한계인 것 같다. '그냥 에어컨 틀어놨으니까 와라'고 얘기하는 거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더위쉼터 이용에 대한 더 많은 홍보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더위쉼터를 시민들이 모르시기도 하고 아신다고 해도 어려운 상황인 데다가, 대부분이 경로당이라 회원이 아닌 사람들이 와서 이용하기엔 제약사항이 많다"며 "노인들은 주변 사람을 통해서 정보를 많이 얻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자주 다니는 곳과 이장님 등을 통해 무더위쉼터 정보를 비치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10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 한 주민센터의 모습. 2025.7.10/뉴스1 © News1 강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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