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고 나서야…규개위, '폭염 속 쉴 권리' 인정

사회

이데일리,

2025년 7월 11일, 오후 04:03

[세종=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33도 이상 폭염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의무적으로 보장하는 ‘폭염 속 쉴 권리’가 이르면 다음주 시행된다. 폭염 속 온열질환으로 추정되는 산재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규제개혁위원회가 뒤늦게 제도화를 인정했다. 규개위는 ‘뒷북 행정’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폭염 속 쉴 권리가 제도화돼도 배달라이더 같은 특수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9일 대구 한 공사장 인근에서 인부가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1일 규개위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곳에서 작업하는 경우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개정안에 대한 규제심사를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법제처의 법제 심사를 거쳐 이르면 오는 17일이나 18일께 시행될 예정이다.

규개위는 올여름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폭염 확산으로 노동자 생명과 건강 보호를 위한 시급성이 인정된다며 규칙 개정안 원안에 동의했다. 그러나 폭염 속 노동자의 잇단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제도화에 나선 점에서 규개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올해 6월 시행을 목표로 ‘폭염때 휴식 의무화’ 제도화를 포함한 안전보건규칙 개정안을 지난 1월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10월 국회가 사업주의 보건조치 의무를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제39조)을 여야 합의로 개정한 데 따른 후속 조처였다.

하지만 규개위는 영세사업장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며 지난 4월 25일과 5월 23일 잇따라 이 조항 철회를 권고하며 휴식 의무화는 제때 시행되지 못했다. 그 사이 온열질환으로 추정되는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공사장에서 일하던 20대 외국인 노동자, 대형마트의 60대 노동자 등이 폭염 속에서 사망했다.

민주노총은 “규개위의 무책임이 부른 참사”라고 규탄했다. 한국노총도 “이 모든 죽음은 예고된 인재이며, 마땅히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라며 “중소·영세 사업주의 입장만 노골적으로 대변해온 규개위의 무도한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휴식 의무화가 시행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점은 한계다. 배달라이더, 택배기사 등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는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산재사고가 빈번한 건설 현장에서도 목수는 휴식이 가능하지만 굴삭기 등 장비 운전자 대부분은 폭염에도 쉴 수 없다.

이 규칙 근간인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 및 40조 적용 대상이 사업주와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기준법과 달리 일부 직종의 특수노동자도 적용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휴식 의무화 조항은 근로자로 못 박아 특수노동자는 원천 배제된다.

한국노총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례없는 7월 초 폭염 속에 지난 열흘 동안 3명의 택배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사망했다”며 택배노동자에 대한 별도의 보호조치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 4~8일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3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한국노총은 밝혔다.

한편 고용부는 폭염 고위험사업장 6만 곳을 중심으로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 준수 여부에 대한 불시 지도·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또 예산 350억원을 들여 영세사업장 중심으로 현장 수요가 많은 이동식 에어컨 등을 이달 말까지 보급한다. 예산 집행 과정에서 현장 실태를 파악해 보완이 필요한 사항은 적극 개선하겠다고 고용부는 밝혔다.

권창준 고용부 차관은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 특히 폭염작업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부여는 법상 의무인 만큼 철저히 준수되도록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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